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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배달부/옛날에 쓴 글들 + 잡동사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6장: 인간의 타락, 죄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형벌에 대하여

by 노목 2020. 8. 17.

Photo by Aarón Blanco Tejedor on Unsplash

 

 

 

1. 들어가는 말

 

성경에서 타락에 대한 교리만큼 많은 이슈를 낳은 테마가 없을 것이다. 타락의 사건으로 인하여서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생겼다. 타락의 사건은 인류를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함으로 기독교 인간론을 형성하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최초의 인간의 모습에 대한 하나님의 완벽한 창조로 인하여 죄의 유입의 근원을 찾을 필요가 생겼다. 이로써 신정론 논쟁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의 예지와 허용의 개념을 구분할 필요가 생겼으며, 이로 인하여 예정론의 교리가 탄생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드신 이유에 대하여 논하기 위해 자유의지논쟁이 촉발되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이슈가 본 장의 주제인 타락과 연관되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하여 본 장을 광의적으로 접근한다면 이 수많은 주제들을 다 다루어야 하기에 지면이 한참 모자라리라 예상된다. 따라서 본고의 연구방법은 본 장이 논하고 있는 소주제들을 분류하며, 각 부분들에 대하여 신학자들이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비교하는 것에서 그칠 것이다. 이와 더불어 가능하다면 개혁주의노선에서 대표성을 띄는 다른 세 교리인 벨직 신앙고백과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도르트 신경을 비교하는 작업도 진행할 것이다.

 

 

2. 1 : 죄의 근원

 

우리의 시조들은 사탄의 간계와 시험에 유혹되어 금지된 열매를 먹음으로 범죄하였다. 하나님은 이 죄를 자기의 지혜롭고 거룩한 계획에 따라 기꺼이 허용하셨는데, 자기 자신의 영광에 이르도록 그렇게 작정하셨기 때문이었다.[1]

본 항은 인간 최초의 타락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말하고 있다. 타락의 사실, 죄의 형태, 죄의 근원, 죄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신정론)과 그 목적. 이러한 각 주제들에 관하여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지 다음을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2.1. 타락의 사실

 

첫 번째로, 본 항은 인간이 타락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는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논지이다. 죄의 발생으로 인하여 인간에게 무능력한 부분이 생겼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게 되며, 인간의 부족한 부분에 대하여 알 수 있게 해 준다.

죄의 발생과 죄로 인한 인간의 타락을 설명함으로써 인간은 창조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형상으로 만들었던 그 완전했던 상태와 현재의 인간의 모습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본 항은 이 인간 최초의 타락이 누구에 의해서 범해졌는지에 대해서도 밝히고 있다. 이는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시조들이라고 번역되어 있으며, 영어 원문을 본다면 “Our first parents”라고 언급함으로 아담과 하와를 가리킨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언급은 벨직 신앙고백[2]이나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3], 도르트 신경[4]이 아담 또는 아담과 하와라는 직접적 주체를 언급하였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완곡한 표현을 들어 나타내었다고 여겨진다.

 

 

2.2. 죄의 형태

 

본 항에서는 최초의 죄가 발생한 형태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 형태는 다름아닌 금지된 열매를 먹는것이었다. 로버트 쇼가 언급했듯이, 단순히 열매 하나를 먹는 것은 굉장히 일상적인 일이었을 것이다[5]. 그러나 여기서 들어온 죄악은 열매를 먹는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먹는 동기를 통해 드러나게 되었다[6]. G. I. 윌리암슨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의 동기가 행위로 드러나게 된 것이라고 언급한다[7].

이어서 그는 성경이 이를 단순히 금지된 나무로 말하지 않았으며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는 나무로 말했다는 사실을 역설한다[8]. 이 언급은 본 행위 이전에는 우리의 최초의 부모가 을 알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최초의 죄악의 형태에 대하여 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금하신 실과를 먹음이라는 행위를 기술하였음에 반하여 벨직 신앙고백이나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도르트 신경은 모두 먹는 행위를 기술하지 않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벨직 신앙고백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졌다[9]고 말하였으며,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에덴 동산에서 범한 타락과 불순종[10], 도르트 신경은 거역”, “불순종[11]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2.3. 죄의 근원과 하나님의 뜻

 

본 주제에 관하여 A. A. 하지는 다음과 같은 두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로, 아담과 하와처럼, 거룩하게 창조받은 도덕적 행위자의 영혼 안에 어떻게 죄된 욕망이나 의지가 들어갈 수 있게 되었는가?[12] 두 번째로, 죄의 개념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허용과 어떻게 연관될 수 있는가?[13] 하지가 짧은 지면으로 이야기한 본 질문에 대한 설명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죄의 원인에 대한 신학적 논쟁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신정론이라 부르는 이 오래된 논쟁에 대하여 본고에서 전부 다 다룰 수는 없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설명 방식에 대하여만 다루도록 하겠다.

하지의 첫 번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신자들과 신자들을 대표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죄책을 하나님에게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또한 온전히 사탄에게로만 돌리지도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탄이 온전한 죄의 근원으로 소급된다면 인간의 죄책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앙고백서는 먼저 시조들이 유혹되었다고 밝힘으로 사탄을 언급하지만, 죄에 대한 책임을 지는 대상은 죄를 범한 자 그 자신으로 한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 스프로울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죄악 된 기질, 악한 욕망, 악한 성향이 없는 피조물이 어떻게 조금이라도 악한 선택을 할 수 있는가[14]? 여기에 대하여 여러 설명이 있지만, 조나단 에드워즈의 언급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행위자들로 하여금 죄의 행위를 하도록 창조했다는 것(producing)과 하나님이 그러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허용했다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15].

 

, 자유의지 아래에서의 인간의 선택은 하나님이 미리 아셨다 해도,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이기에 인간 스스로에게 죄책이 부여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의 가능성을 열어두셨지만, 죄를 원하시지는 않으셨다.

하지의 두 번째 대답과 연관되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작정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일까? 허용은 죄의 창조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한 어거스틴의 설명은 악 자체는 비본질적이라는 점이다. 악은 없음의 개념과 같다. ‘없음이란 실재(實在)하는 사물에 대한 개념이 아니듯이, 악 또한 실재하는 것에 해당하는 개념이 아니다. 바로 악은 선의 빈 공간, 즉 선의 결여를 의미한다. 이러한 어거스틴의 전통을 좇아 에드워즈 또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태양의 존재가 빛과 온기의 원인이라는 것과 태양이 지고 난 후 어둠과 추움의 원인이라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16].

 

하지만 하나님의 작정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어떤 신학자도 감히 입을 열지 못한다. 바르트는 이에 대하여 불가능한 가능성(die unmӧgliche Mӧclichkeit)이라고 언급하며, 인간의 이성의 권위가 성경의 권위를 대신할 수 없다고 말함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진리에 대한 인정을 권한다[17]. 에드워즈도 이를 하나님의 신비로 묻어두기를 원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경륜으로 스스로를 영화롭게 하시기를 원하신 것이다.

벨직 신앙고백은 제 14장에서 원인자로서의 사탄의 존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스스로 사악한 죄악에 내던져라는 말을 덧붙임으로, 그 죄악이 결과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하여 발생한 것이라는 언급을 명시하고 있다[18].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먼저 제7번 문항을 통하여 죄악을 범한 주체인 아담과 하와의 죄악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19]. 이후로 9번 문항을 통하여 유혹하는 자인 마귀를 밝힌 후, 역시 인간의 고의성에 대하여 밝힘으로 사탄이 최고 원인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언급한다[20]. 도르트 신경은 셋째와 넷째 교리를 통하여 원인자를 사단의 유혹과 자유 의지라고 밝힌다[21]. 본 언급은 마치 원인자가 둘인 것처럼 생각하여 죄책의 정도를 훼손시킬 해석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3. 2 : 죄의 유효성

 

그들은 이 죄에 의하여 그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의와 하나님과의 교제로부터 타락했고, 그리하여 죄 가운데 죽게 되었으며, 영혼과 육체의 모든 부분과 기능이 전적으로 오염되었다.[22]

 

본 항에서 칼빈주의의 5대 강령 중 첫 번째 교리인 전적인 타락”(total depravity)이 등장하게 되었다. 본 항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전달하여 준다. 첫 번째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죄악으로 인하여 단절되었다. 두 번째로 죄악에 의해서 우리의 의로움은 상실되었다. 세 번째로 모든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모든 인간의 영혼과 육체의 기능은 도덕적으로, 그리고 전체적으로 그 기능의 완전성을 상실하고 오염되었다.

 

 

3.1.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

 

A. A. 하지에 의하면, 죄악은 즉각적으로 인간을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끊겨지게 만들었다[23].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과의 교제는 에덴에서의 추방으로 드러나는 물리적인 것이기도 하였으며,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에 대한 단절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는 죄의 유효성에 대한 이하의 세 가지의 현상을 이끌어 내었다[24].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됨으로 인하여서 인간의 본래적 의(Original rightousness)는 상실되었다. 따라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으며, 인간의 모든 기능은 타락하여 제대로 사용될 수 없게 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외의 세 가지 개혁주의 신앙고백 중, 벨직 신앙고백만 유일하게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벨직 신앙고백은 14장을 통하여 참 생명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과 도르트 신경은 죄로 인하여 단절된 이후의 인간의 모습에 대하여 묘사함으로 이 멀어짐을 간접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3.2. 의로움의 상실

 

여기서 언급된 의로움이란 아담과 하와가 창조시에 부여받았던 본래적인 의(Original righteousness)를 말한다. 사실 인간의 최초의 상태에 의롭거나 의롭지 않음에 대한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기에 최초의 인간은 좋았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할 수 있는 거룩함과 본래적 의만을 소유한 존재였다. 하지만 죄의 유입으로 인하여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본래적 의로움을 손상시켰으며, 이를 하나님께 보상해야만 할 책임이 생겼다. 따라서 이것이 해결되기 전까지 인간은 더 이상 의로울 수 없게 되었으며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할 수 없게 되었다.

벨직 신앙고백은 제14장에서 인간 최초의 상태에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의가 있었다고 규정한다[25].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인간 최초의 상태에 의로움이 존재했다는 것을 생략하였지만,  12문을 통하여 구속으로 인한 의로움의 회복을 말하고 있다[26]. 도르트 신경은 셋째와 넷째 교리의 1장에서 마음과 의지가 의롭고 순결했다고 언급한다[27].

 

 

3.3. 필연적인 사망

 

로마서의 개념에 대한 진술인 본 항의 사망에 대하여 로버트 쇼는 이것이 세 가지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육체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인간이 육체적으로 죽는 것은 이 땅에서 육체와 영혼(anima)이 분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영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과 은혜를 잃어버리게 된 것을 말한다. 세 번째는 영원한 죽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영혼과 육체를 영원히 분리시켜 놓으시는 것을 말한다.[28] 쇼의 이러한 구분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항목은 사실 같은 것을 내포하기에 실질적인 구분은 크게 드러나지 않아 보인다.

벨직 신앙고백은 14장에서 육체적인 죽음과 영적인 죽음을 구분하여 설명한다[29].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10번째 문항에서 일시적인 심판과 영원한 심판을 구분[30]하며, 11번째 문항에서는 몸과 영혼 양자의 형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31]. 도르트 신경의 첫째 교리 제 1장은 로마서 6 23절을 인용함으로 우리들이 사망에 처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히며, 이 죽음은 영원한 것임을 언급하고 있다[32]. 둘째 교리 제 1장에서는 일시적인 죽음과 영원한 죽음(징벌), 그리고 육과 영혼의 죽음을 구별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33].

 

 

3.4. 기능의 오염

 

죄로 인하여 아담과 그 후대의 모든 인간들은 기능적으로도 타락하게 되었다. 여기서 언급하는 기능의 오염이란 아예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의 종이 바뀐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윌리암슨에 의하면, “전적인 타락이란 기능상의 범위, 혹은 정도에 미친 손상을 의미한다[34].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높은 지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 그의 지성은 죄에 의해서 파괴되지 않았으며, 작동이 불가능하게 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항상 오작동하게 되었다. 모든 인간은 창조주보다 창조물을 경배하게 되었다.[35]

본 언급으로 지성의 오염에 대하여 언급한 윌리암슨은, 이어서 인간의 의지와 감정(affection)또한 파괴되지 않았지만 제대로 기능하지 않게 되었다고 언급한다[36].

이에 대하여 벨직 신앙고백은 인간이 전적으로 부패해졌다고 언급하였지만, 다음의 언급을 덧붙임으로 인해 다소간의 오해를 증식시킬 여지를 안고 있다.

 

인간이 모든 면에서 악해지고 잘못되어 부패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그 놀라운 은혜들을 다 잃어버리고 그 중에 지극히 작은 부분만 남게 되었는데, …….[37]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전적인 오염을 언급하고 있는데에 반해, 벨직 신앙고백은 은혜들을 잃어버렸다고 언급하였다. 이는 마치 인간의 최초의 모습과 타락 이후의 모습에 큰 기능상의 차이가 있다고 해석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처럼 보인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인간의 삶은 너무나도 오염되어라고 밝힘으로 기능의 오염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도르트 신경은 네 가지 신앙고백서들 중 가장 체계적으로 인간 기능의 오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 그를 지으신 이에 대한 참된 구원의 지식과 영적인 일들에 관한 추구가 있었다. 즉 그의 지성과 의지는 의롭고 순결했으며 전인격은 성결했었다. 그러나 인간은 사단의 유혹과 자유 의지로 인해 하나님을 거역하여 이 특별한 은사들을 빼앗겼으며, 그로 인해 사악한 마음과 비참한 어두움과 헛됨과 잘못된 판단력을 가지고 악하고 불순종하며 지성(mind)과 의지는 완악해지고 감정이 불결해져 버린 것이다.[38]

 

 

4. 3 : 죄의 전가

 

그들은 모든 인류의 기원이었기 때문에 이 죄의 책임이 전가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일반적인 출산에 의해 내려오는 모든 자손들에게 죄로 인한 동일한 죽음, 타락한 본성도 전달되었다.[39]

본 항에서 언급되는 죄의 전가에 대한 교리에 대하여도 역사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초대교회 이후, 동방과 서방으로 갈라진 신학적 조류들 사이에서 큰 분화점을 차지했던 것이 바로 이 죄의 전가에 대한 교리인 것이다. 그들 중 서방의 교리를 좇아 정통교리로 고착된 본 항에서 항목화 할 수 있는 내용을 구분지으면 다음과 같다; 아담의 대표성, 죄의 전가, 전가된 죄의 효력.

 

 

4.1. 아담의 대표성

 

본 항에서 첫째로 밝히고 있는 것은 아담의 대표성이다. ‘그들이라고 언급되는 우리의 첫 번째 부모들은 모든 인류의 기원(root of all mankind)이다. 이에 대하여 하지는 아담의 대표성이 그가 모든 인류의 육체적 시조이며, 언약적(federal)으로도 시조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고 밝힌다[40]. 따라서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그의 범죄로 인해서 나머지 인류가 죄를 물려받게 되는 것이다.

 

 

4.2. 죄의 전가

 

역사적으로 성경에 드러난 죄의 전가에 대한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한 큰 논란이 있었다. 먼저 아직 교리의 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던 초기 교회에서는 동서방 교회에서 여기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었다. 동방 교회는 죄의 전가를 유전으로 보았다. 아담의 범죄로부터 형성된 죄라는 은 인간에게 사망을 가져다 주는 질병을 낳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대에 태어난 우리들은 자연적으로 이 질병에 걸리게끔 된 것이다. 따라서 이 질병에 대한 치료제로써 성육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이다.

그러나 서방 교회는 이 전가의 교리를 법정적으로 해석하였다. 아담에게 주어진 원의를 훼손한 아담은, 그 의를 보상할 책임이 주어졌다. 따라서 이 대가로 아담은 죽음에 이르게 되었으며, 이 책임을 계승한 우리 또한 법정적으로 죄를 범한 자가 되게 되었다.

스프로울에 따르면, 이 서방 교회의 법정적 전가 교리의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후의 신학자들은 전통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이를 해석하였다[41]. 첫 번째는 실재론(realism)적 측면이다. 아담이 죄를 지을 때에 우리는 아담 안에서 씨앗으로 존재하였다. 이는 허리에 있었다는 말로 증거하는 성경의 가르침[42]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따라서 우리는 아담이 지은 죄를 우리에게 전가받는 것이 아니라, 사실 씨앗의 형태로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되었다.

두 번째는 언약주의(federalism)이다. 아담은 인간 공동체에서 선출된 대표자로서 인류의 언약적 우두머리가 되었다. 또한 그리스도도 두 번째 대표자로서 인류의 머리가 되었다. 아담의 대표성에 의하여 그를 좇는 공동체인 우리들 또한 그 죄에 대한 혐의를 공동으로 책임지게 되었다. 예수님의 대표성에 의하여 그를 좇는 우리들은 죄의 혐의를 벗게 되었다.

벨직 신앙고백은 이에 대하여 전염 전가를 함께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43]. 이것은 동방 교회의 영향이 아닐까 의심되는 부분이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인간 모두가 다 죄의 상태에서 잉태되고 출생하게 되었다[44]고 밝히고 있다. 도르트 신경은 죄의 전가의 과정에 대하여 세부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인간은 타락한 후에 자녀를 낳았으므로, 타락 이후의 자녀들은 죄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다[45]. 도르트 신경의 이러한 입장은 실재론적 측면에 서 있다고 보인다.

 

 

4.3. 전가된 죄의 효력

 

전가된 죄는 원죄가 인간에게 미친 영향보다 더하거나 덜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원죄와 전가된 죄는 그 효력에 있어서 동일하다. 전가된 죄는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다 주며, 기능상의 오염을 가지고 왔다.

 

 

 

5. 4 : 의지에 미치게 된 죄의 영향

 

이러한 원래적 부패로 말미암아 우리는 선을 행하려는 마음을 결코 가지지 못하고 그것을 행할 능력이 전혀 없고 모든 선에 반대하며 전적으로 온갖 악으로 치우치는 성향이 있다. 이러한 원래적 부패로부터 모든 실제적인 범죄들이 나온다.[46]

본 항은 인간의 의지에 있어서 죄가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앞서 살핀 바, 죄는 인간의 기능을 부수거나 없애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기능상의 범위에 있어서 오염시키게 되었는데, 인간의 의지는 원래 창조의 목적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었다.

스프로울은 본 항을 역사적 종교개혁 신학의 특징을 구별시키는 핵심적 진술들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는다[47]. 로마 카톨릭의 인간론은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물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다는 점으로 인하여 인간을 중간적 존재로 보았다. 인간이 창조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은 지성과 의지, 감정이다. 타락은 이러한 구조와 방법에 대하여 전혀 손상시키지 못하였다. 단지 인간에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인간이 하나님보다 부족하게 창조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계신 것을 담지할 수 있을 뿐이지, 확신할 수 없다. 이에 근거하여 카톨릭의 자연신학이 출발하게 되었다.

이에 반하여 개혁신학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을 때의 인간의 상태는 타락 이후의 상태와 구별된다고 언급한다. 인간의 타락은 인간 기능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따라서 비록 인간은 본래적 지성과 의지, 감정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것을 올바르게 활용할 능력이 없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 본 항의 내용이다. 인간은 선을 행하려는 마음을 결코 가질 수 없으며, 그것을 행하기에 무능력하다.

본 항의 진술을 위하여 에드워즈의 언급을 빌려 올 수 있다. 에드워즈는 개혁주의적 논지 아래에서 본 항에서 사용한 성향(disposi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논의를 이어가기 때문이다. 에드워즈에 의하면 사람들의 의지는 지성이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48]을 의미한다. 지성은 감각 정보들 중에서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agreeable)[49]을 선택한다. 여러 감각 정보들 중에서 좋아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특별한 마음의 기질[50]이며, 에드워즈는 이를 마음의 경향성(disposition)이라고 언급한다[51]. 결과적으로 행위자의 의지는 행위자가 가진 경향성에 의해서 부여된, ‘좋음이라는 동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에드워즈에 의하면 죄는 경향성에 영향을 미쳤다. 첫 번째 아담의 죄를 전가 받은 후대 사람들의 모든 본성은, “죄의 원리와 행동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의 경향성은 죄된 것을 좋아 보이는 것(agreeable things)으로 여기도록 철저하게 타락하게 되었다. 논의를 이어서 에드워즈는 만약 중생치 못한 모든 사람들이 아무리 자신의 힘으로 선한 것을 결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라고 정의하신 그것을 절대 넘을 수 없다고 말한다[52]. 이러한 에드워즈의 설명은 칼빈이 주장하였던 노예 의지의 개념과 정확하게 맞물린다.

벨직 신앙고백은 의지의 타락에 대하여 세부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반면에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5번 문항을 통하여 인간의 본성적인, 죄악된 경향이 있다는 점에 대하여 밝히고 있다[53]. 도르트 신경 또한 의지의 완악함정도를 언급함으로 인간의 의지적 타락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54].

 

 

6. 5 : 성도들에게 미치는 죄의 유효성

 

본성의 이러한 부패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중생한 사람들 안에도 남아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것이 용서되고 억제된다고 할지라도 부패한 본성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모든 행동들 양자 모두 참으로 그리고 정당하게 죄이다.[55]

본 장에서는 원죄가 아닌, 전가된 이후의 죄가 후대의 인간들 중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미치는 영향의 범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본 항의 내용은 다음의 두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죄가 효력을 발휘하는 대상, 성도들에게 미치는 죄의 범위. 이들 중 성화에 관련된 후자는 웨스트민스터 13장의 해설을 보면 더욱 자세하게 알 수 있다.

 

 

 

6.1. 죄가 효력을 발휘하는 대상

 

먼저,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죄의 전가는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미쳤다. 설령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하여서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성도라 할지라도 이 본성적 타락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윌리암슨에 의하면, 아직 중생하지 못한 자들과 중생을 경험한 자들의 사이에는 불연속성과 연속성이 공존한다[56]. 양자간에 존재하는 불연속성이란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한 신분의 변화이다. 중생 이전의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의로움을 보상하지 못하여 아직 죄악된 신분에 처해 있다. 중생 이후의 인간은 그리스도의 대표적 속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 칭해 주신다. 따라서 신분에 있어서의 큰 차이를 보인다. 반면에 양자간에 존재하는 연속성은 죄의 유효성을 의미한다. 전가된 죄는 성도들이 중생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성도 안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

벨직 신앙고백서는 원죄의 교리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함으로 성도들과 일반인들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동시에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전가된 죄악이 중생으로 인하여 희석된다는 식의, 정도의 차이에 해당한다고 해석될 여지를 보인다.

비록 이 죄악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진노를 받기에까지 전가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57]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과 도르트 신경은 중생된 이후와 이전의 인간의 연속성 혹은 불연속성에 대하여 따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6.2. 성도들에게 미치는 죄의 범위

 

우리가 의롭다 칭함을 얻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즉시 성화되지 못한다. 또한 스프로울이 말한 바와 같이, 우리의 칭의는 이 땅에서의 완전한 성화의 가능성을 보증하지 않는다[58].

전통적으로 칼빈주의 내에서 본 교리의 이해와 맞물려 두 가지의 오류가 발생하였다. 첫 번째는 완전주의(perfectionism)이다. 완전주의자들은 중생한 자들에게는 죄의 영향력이 전혀 없기에 성도들은 노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무리들을 말한다[59]. 이들은 아르미니우스주의(Arminism), 혹은 낮은 칼빈주의(Lower Calvinism)와 결탁하여 인간의 의지적 측면을 격상시키려는 노력을 하였다[60].

두 번째의 그룹은 율법 폐기론(antinomianism)이다. ()율법론자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완전한 성화는 불가능하기에 성화의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하였다[61].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서 구원의 확인에 대한 한 가지의 방편인 성화, 즉 삶의 열매는 효력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들은 성령의 체험을 강조하는 성향을 보이게 되었다[62].

 

 

7. 6 : 죄의 책임과 결과

 

원죄와 자범죄 양자를 포함하는 모든 죄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에 대한 위반이고, 거역이기 때문에 그 고유한 본질상 죄인에게 죄책을 가져온다. 그것에 의하여 죄인은 하나님의 진노와 율법의 저주 아래 얽매이고 그리하여 사망에 굴복하게 되는데, 그것은 모든 고통, 즉 영적, 현세적, 영원한 고통을 포함한다.[63]

본 항은 죄에 대하여 아담 후대의 인간들이 져야 하는 책임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원죄와, 그 영향으로 후대의 인간들이 범하게 되는 2차적인 죄악인 자범죄 양자를 통해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게 되었다. 스프로울에 의하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게 된 첫 번째 결과는 죄책이며[64], 두 번째 결과는 하나님의 진노이다[65].

죄책에 의하여 인간은 사망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망은 고통을 포함한다. 그리고 죄악은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한다. 18세기와 19세기를 아우르며 새롭게 등장한 사조는 경험주의 철학의 영향으로 발생한 과학주의와 이신론이었다. 귀납적 사유로 검증 가능한 사실만을 믿음의 대상으로 하는 과학주의에 의거하여, 신학에서도 인간과 교통하는 하나님의 이미지가 부인되며, 일자(一者)로써의 하나님의 이미지가 제기되었다. 스프로울이 설명하는 이신론적 신론은 다음과 같다.

사람은 매우 나쁘지 않고 하나님은 크게 화내지 않으신다. 진노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이기때문에 하나님이 화를 내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것이 될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한 번이라도 화를 내신다면 그는 하나님이실 수 없다.[66]

하지만 본 항을 통해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합의한 교리는 하나님의 진노가 실재한다는 것이다. 화목의 직무를 담당하는 그리스도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없다면 성립되지 않게 된다.

 

 

 

8. 나가는 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6 1항에서는 죄의 근원에 대하여 다루었다. 여기서 긴 역사를 가진 신정론 논쟁이 촉발되었지만, 개혁주의적 입장은 죄의 근원을 하나님에게도, 사탄에게도 돌리지 않는 것이다. 2항에서는 죄의 유효성에 대하여 다루었다. 원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 이로써 인간의 원의는 상실되었으며 모든 인간은 필연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후대의 인간의 기능은 오염되었다. 이는 인간의 기능이 상실되거나 추가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능의 범위와 방향에 있어서의 오류를 의미하는 것이다.

3항을 통하여서 죄의 전가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전가 교리는 서로 다른 강조점 아래에서 정반합적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여타의 신앙고백은 대부분 서방의 교리를 채택해서 법정적 전가의 교리를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벨직 신앙고백등을 볼 때에, 동방 교회의 영향이 드물게 남아있음을 볼 수 있었다.

4항은 죄의 영향 중, 특별히 의지와 관련된 죄의 영향을 다루었다. 여기서 촉발된 자유의지논쟁 또한 신학과 철학, 심리학과 법학등과 관계하여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지향점은 칼빈과 에드워즈가 말한 노예의지론, 즉 죄 아래에 있는 중생 전의 인간들에게는 선을 행할 의지가 없다는 것에 있어야 마땅하다.

5항은 성도들에게 미치는 죄의 유효성에 대하여 다루었다. 죄의 영향은 성도라 할지라도 제외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성도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 인생을 살아가면서 성화의 과정을 겪는다. 하지만 이 땅에서는 완전히 성화될 수 없다. 이를 둘러싼 여러 논쟁들 사이에서 완전주의와 율법폐기론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마지막인 6항은 죄가 가지고 오는 책임과 결과에 대하여 다루었다. 죄의 책임으로써 인간은 고통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구약시대와 마찬가지로, 현 시대에도 실재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6장은 참으로 비참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담 한 사람의 죄악으로 인하여 후대의 모든 인류가 비참한 죄악 가운데에서 고통과 함께 죽음을 목전에 놓고 살아가게 되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의 은혜가 없다면, 인류에겐 소망이 없다. 어쩌면 이런 상황에서 카뮈나 사르트르와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체념한 채 발견한 자조적 조소는 슬픈 현실에 직면한 인간들에게 당연한 반응으로 보이기도 한다.

 

 

 

9. 참고문헌

성경전서, 개역 개정 한글 4.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벨직 신앙고백.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도르트 신경.

 

Edwards, Jonathan, WJE 1, Ed. Paul Ramsey. Freedom of the will.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57)

                   , WJE 21, Ed. Sanghyun Lee. Writings on the Trinity, Grace, and Faith.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3)

                   , WJE 2, Ed. John E. Smith. Religious Affection.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59)

Hodge, A. A. The Confession of Faith, (Pennsylvania : Banner of Truth, 1958)

Shaw, Robert. An Exposition of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Scotland : Christian Focus Publications, 1992)

Sproul, R. C. Truths We Confess. (New Jersey : P & R Publishing Company, 2006)

Steele, David N. Thomas, Curtis C. Quinn, S. Lance. The Five Points of Calvinism. (Phillipsburg: P & R Publishing Company, 2004)

Williamson, G. I.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for study classes. (New Jersey : P&R Publishing Company, 2004)

 

 

 


[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6, 1.

[2] 벨직 신앙고백,  15,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

[3]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7, “인간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

[4] 도르트 신경, 첫째 교리, 1, “모든 인간은 아담 안에서 범죄하여 …….”

[5] Robert Shaw, An Exposition of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Scotland : Christian Focus Publications, 1992), 74.

[6] Ibid.

[7] G. I. Williamson,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for study classes (New Jersey : P&R Publishing Company, 2004), 71.

[8] Ibid.

[9] 벨직 신앙고백,  14.

[10]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7.

[11] 도르트 신경, 셋째와 넷째 교리,  1.

[12] A. A. Hodge, The Confession of Faith (Pennsylvania : Banner of Truth, 1958), 106.

[13] A. A. Hodge, The Confession of Faith, 107.

[14] R. C. Sproul, Truths We Confess (New Jersey : P&R Publishing Company, 2006), 181.

[15] Jonathan Edwards, WJE 1, Freedom of the will, Ed. Paul Ramsey,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57), 403.

[16] Jonathan Edwards, Freedom of the will, 404.

[17] G. I. Williamson,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for study classes, 70.

[18] 벨직 신앙고백,  14.

[19]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7.

[20]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9.

[21] 도르트 신경, 셋째와 넷째 교리,  1.

[2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6, 2.

[23] A. A. Hodge, The Confession of Faith, 108-109.

[24] Ibid., 109.

[25] 벨직 신앙고백,  14, “하나님께서 인간을 …… 그의 선하심과 그의 의로우심 또한 거룩한 형상으로 만들어졌음을…….”

[26]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7.

[27] 도르트 신경, 셋째와 넷째 교리,  1,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 ……. 그의 마음과 의지는 의롭고 순결했으며 전인격은 성결했었다.”

[28] Robert Shaw, An Exposition of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76

[29] 벨직 신앙고백,  14.

[30]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10.

[31]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11.

[32] 도르트 신경, 첫째 교리,  1. “모든 인간은 …… 영원한 죽음을 받기에 마땅하므로

[33] 도르트 신경, 둘째 교리,  1. “즉 우리의 육과 영혼에 있어서 일시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원한 징벌을 요구하신다는 것이다.”

[34] G. I. Williamson,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for study classes, 72.

[35] Ibid.

[36] Ibid., 72-73.

[37] 벨직 신앙고백,  14.

[38] 도르트 신경, 셋째와 넷째교리,  1.

[3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6, 3.

[40] A. A. Hodge, The Confession of Faith, 110.

[41] R. C. Sproul, Truths We Confess, 186-191.

[42] 히브리서 7:9-10

[43] 벨직 신앙고백,  15.

[44]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7.

[45] 도르트 신경, 셋째와 넷째 교리,  2.

[4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6, 4.

[47] R. C. Sproul, Truths We Confess, 191.

[48] Jonathan Edwards, Freedom of the will, 137.

[49] Ibid., 143.

[50] Ibid., 146.

[51] Ibid., 147.

[52] Jonathan Edwards, WJE 21, Writings on the Trinity, Grace, and Faith, Ed. Sanghyun Lee,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3), 154.

[53]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5, “나는 본성적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미워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54] 도르트 신경, 셋째와 넷째 교리,  1.

[5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6, 5.

[56] G. I. Williamson,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for study classes, 77.

[57] 벨직 신앙고백,  15.

[58] R. C. Sproul, Truths We Confess, 192.

[59] G. I. Williamson,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for study classes, 78.

[60] David N. Steele, Curtis C. Thomas, S. Lance Quinn, The Five Points of Calvinism (Phillipsburg: P & R Publishing, 2004), 6.

[61] G. I. Williamson,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for study classes, 78.

[62] 이들은 믿음도 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있어 구원을 위한 믿음의 지위는 상당히 격하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이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은 외부로부터 작용하는 어떠한 내적인 변화, 즉 환상을 보거나 음성을 듣는 등의 은혜의 체험에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내면의 성찰과 자신에게 임하는 전적인 은혜의 경험을 격렬하게 원했고, 에드워즈는 이를 광신주의(enthusiasm)나 환상주의(visionary religion)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격렬하게 경계한다. Jonathan Edwards, WJE 2, Religious Affection, Ed. John E. Smith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59), 72.

[6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6, 6.

[64] R. C. Sproul, Truths We Confess, 274.

[65] Ibid., 275.

[66] Ibid.,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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