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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배달부29

복을 주시는 아빠 하나님 하나님을 향유(frui)할 수 없게 만드는 모든 종류의 가르침은 배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기복주의를 매우 싫어한다. 나는 그것을 가르쳐 본 적도 없고, 그것을 신앙해 본 적도 없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니 하나님은 내 인생에 수 많은 복을 쏟아 부어주셨다. 그렇기에 복에 대해 아예 함구할 수도 없다. 복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비출 때에나 복이다. 나는 나에게 이러한 복을 주신 하나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가난했다. 그러나 더 가난하게 된 시절은 내가 신학교에 가기로 결정하고부터였을 것이다. 알콜 중독이었던 무신론자 아버지는 나의 회심을 혐오하셨다. 내가 교회에 가면, 나의 아버지는 보란듯이 술에 취하여 단칸방의 모든 구석을 술냄새로 가득 채워놓으셨다. 아버지가 원하던 대로 나는 남들보다 이.. 2020. 11. 29.
노목의 교회 이야기 (1) 교회에 처음 가던 날 나는 교회가 좋았다. 처음 발을 딛는 그 순간부터, 교회는 나에게 깊은 사랑의 향취를 풍겨내기 시작하였다. 중학교 2학년의 어느날 봄이었다. 학교를 마친 나는, 친구와 함께 놀러갈 생각을 하며 친구와 함께 집에 잠시 들렀다. 당시 나의 부모님은 연지동 시장 골목의 지하에서 그릇을 팔고 계셨을 때였다. 우리 가족의 집은 그 가게에 딸린 방 한칸이었다. 집에 책가방만 놓고 다시 나가려 하였다. 친구와 함께 방에 들어가니 어른들이 계셨다.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로 이모와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무슨 일인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쳐다보니, 이모가 내 손을 붙들어 자리에 앉혔다. 자리에 앉았을 때에도 무슨 상황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친구도 그냥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들은 찬송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생전.. 2020. 10. 24.
초대교회사 인물정리 이걸로 끝! 후스토 곤잘레스의 "기독교 사상사" 안녕하세요, 신학배달부의 노목입니다! 교부(Church Father)는 일반적으로 그레고리 1세의 즉위 전까지로 분류되는 초대교회사의 신학자들을 가리키는데요, 어거스틴 이전의 신학자들의 특징을 너무나도 잘 분류해 놓은 책이 있어서 한권 소개해 보려 합니다! 후스토 곤잘레스의, 입니다!! 곤잘레스는 초대교회의 역사 중 세 지역을 구분하고, 이 세 지역의 신학을 특정화 하여 세 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합니다! 그 중 A 유형은,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활동한 신학자들입니다. B 유형은,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한 신학자들입니다. 마지막 C 유형은, 안디옥과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활동한 신학자들입니다. 이들이 무슨 사상을 가지고 활동했는지는, 유튜브 영상을 함께 즐겨주세요! 감사합니다! ^^* 2020. 9. 3.
창세기 40장 1-23절 : 최악의 상황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작은 불빛 어렸을 때, 요셉을 “꿈의 사람”이라고 말하는 목사님들의 설교가 이해되지 않았다. 요셉은 그저 꿈을 꾸었을 뿐이다. 꿈은 무의식의 표상이라고 하지 않는가? 내가 꾸고 싶어서 꿈을 꾸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꿈은 “꾸게 되는 것”이지 의도성을 가지고 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받은 꿈을 가지고 고통을 받는 요셉을 “꿈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목회를 하다 보니 요셉은 확실하게 꿈의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꿈이 없는 청소년들에게 비전을 물으면 어리둥절해한다. 황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무엇을 말할지 급조하기에 바쁘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저 그들에게 비전이 없을 뿐이다. 그러한 인생인 요셉에게 너무나도 추상적인 두 편의 꿈이 제.. 2020. 8. 26.
창세기 39장 1-23절 :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 요셉의 이야기를 읽으면 눈물이 많이 난다. 딱히 요셉이 저지른 죄악이 있었던가? 하나님의 꿈에 반응하고 철없이 그것을 형제와 부친께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형제들은 대부분 그를 백안시하였다. 그의 부친은 그의 고통을 세밀하게 알지 못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이끌어 가신다. 하나님은 요셉이 필요하셔서 그를 이끄셨다. 요셉이 필요하시기에 그를 사용하시기 위하여 먼저 그를 낮추셨다. 그리고 그 낮아짐의 기간 동안, 요셉에게 끊임없이 당신의 살아계심을 보이셨다. 종국에는 그를 통하여 야곱의 자손들을 구하시는 놀라운 경륜을 보이신다. 인생의 단계를 거치며, 요셉은 얼마나 슬펐을까? 순종하며 걸어간 길의 끝에 또 다른 바닥이 있다. 여기가 바닥인줄 알았더니, 더 추락할 곳이 있더라는 격이다. 사랑하는 사람.. 2020. 8. 23.
창세기 38장 1-30절 : 유다 가문에 드러난 죄악 보석이 한 줌 놓여있으면, 오히려 더 보석같지 않다. 보석이 한 알 놓여있어도 마찬가지이다. 보배롭지 않은 읿반적인 돌, 대조군이 옆에 놓여있어야 보석은 더욱 보석다워진다. 비평학자들은 창세기 38장의 유다와 다말 이야기가 잘못 삽입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후대의 편집자가 끼워넣다가 이야기를 잘못 넣었다는 것이다. 요셉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을 깬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 해석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입술을 통해 이 이야기들을 배치하실 때, 분명한 이유와 원인 아래에 이 모든 서사를 배치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유다의 이야기가 여기서 등장하게 되는가? 1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2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 2020. 8. 21.
창세기 37장 18-36절 : 되풀이되는 죄악의 역사 구약의 역사를 총찰해보면, 죄악의 삶이 반복되는 장면을 연거푸 발견한다.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저지른 죄악은 두 번이나 되풀이 되었고, 이는 이삭에게서도 여전히 발견되었다. 야곱은 속임으로써 자신의 권리를 취하였으나, 속임을 당함으로써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잠시 잃게 되었다. 신자들은 구원받았으니, 이 땅에서의 죄악은 회개로 언제나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하나님은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행동과 결정 모두를 중요하게 여기신다. 어쩔 때는 그것을 다시 되갚으시며, 어쩔 때는 그것을 계수하시어 뛰어넘게 만드신다. 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2020. 8. 20.
칼빈주의의 양 극단 : 신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율법폐기론) I. 들어가는 말 A. 문제의식과 목적 성도에게 있어서 인간의 행위는 구원과 관련되어서 어떠한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하는가? 이를테면 자유로운 인간의 의지의 발현에 의한 행위라는 측면을 부각시키게 되면, 그 논리적 귀결은 자연스럽게 성도들의 행실을 선한 측면으로 강제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이 견해는 하나님의 전능성과 믿음에 의한 칭의라는 두 가지 개념을 놓치게 된다. 반대로 하나님의 전능하신 예정과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이라는 견해를 취한다면 방금의 견해를 모두 보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견해는 성도의 행위적 측면을 교리적으로 예속시킬 수 있는 근거를 상실해 버린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성도들의 삶에 대한 태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보장되어야 할 필요를 가진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2020. 8. 19.
창세기 37장 1-17절 : 요셉의 순종 창세기는 요셉의 이야기로 마지막 족보의 역사(톨레도트)를 기록한다. 약속의 땅에 들어오기는 하였으나, 아직 완전한 성취가 일어나지 않았다. 자녀들이 많기는 하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 만큼 많지는 않다. 하나님의 약속은 시작되었지만 아직 성취된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이 땅에서, 야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너무나도 우리의 삶과 동일한 이 고민 가운데, 요셉으로 퍼져가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다시 시작된다. 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2020. 8. 19.
슐라이어마허와 조나단 에드워즈의 감정 개념 연구 - 종교론과 신앙감정론을 중심으로 슐라이어마허와 조나단 에드워즈의 감정에 관련된 개념 연구 ―『종교론』과 『신앙 감정론』을 중심으로 the Study of Concept Related 'Emotion' in Schleiermacher and Jonathan Edwards ― Focusing on the On Religion and Religious Affection ◀ 국 문 초 록 ▶ 본 논문은 슐라이어마허와 조나단 에드워즈가 감정과 관련해서 사용한 개념들을 비교함으로 내재적 신학의 올바른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목적을 가진다. 슐라이어마허는 형이상학과 도덕이 차지했던 종교의 영역을 직관과 감정으로 재정의했다. 그는 종교를 인간이 우주, 즉 신을 직관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이로 인해 감정이 생겨난다고 보았다. 슐라이어마허의 인식론적 틀에서.. 2020. 8. 18.
창세기 6장 18-22절 : 노아와 맺으신 언약 어렸을 때의 나는 학교에서 단체기합을 받는 것이 너무 싫었다. 이는 그 원인이 나에게 있지 않았기에 몹시도 불쾌한 일이었다. 친구가 떠들었는데, 반의 다른 아이들이 수업 태도가 좋지 않았는데, 나를 비롯한 모든 친구들이 다 책상위에 무릎을 꿇고 허벅지를 맞아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신앙을 처음 접하던 중학생의 나는 원죄의 법칙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담이 지은 죄가 어떻게 나에게 전가가 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죄의 지배 아래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내가 그 죄 때문에 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 또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체기합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불쾌감을 원죄의 교리를 처음 접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 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 2020. 8. 18.
창세기 6장 13-17절 : 방주, 공의와 사랑의 교차점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1. 공의와 사랑의 교차점 노아의 방주 사건을 총찰하며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여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앞서 본 것과 같이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을 보셨다.. 2020.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