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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배달부/창세기 묵상 나눔

창세기 38장 1-30절 : 유다 가문에 드러난 죄악

by 노목 2020. 8. 21.

Judah and Tamar – (Aert De Gelder) Ⓒ wiki00

 

 

보석이 한 줌 놓여있으면, 오히려 더 보석같지 않다.

보석이 한 알 놓여있어도 마찬가지이다.

보배롭지 않은 읿반적인 돌, 대조군이 옆에 놓여있어야 보석은 더욱 보석다워진다.

 

비평학자들은 창세기 38장의 유다와 다말 이야기가 잘못 삽입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후대의 편집자가 끼워넣다가 이야기를 잘못 넣었다는 것이다.

요셉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을 깬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 해석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입술을 통해 이 이야기들을 배치하실 때, 분명한 이유와 원인 아래에 이 모든 서사를 배치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유다의 이야기가 여기서 등장하게 되는가?

 

 

1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2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의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4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5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6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7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8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9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10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11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12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의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의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13   어떤 사람이 다말에게 말하되 네 시아버지가 자기의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14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이라 
15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16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17   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18   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19   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너울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20   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담보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21   그가 그 곳 사람에게 물어 이르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1)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22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이르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였고 그 곳 사람도 이르기를 거기에는 창녀가 없다 하더이다 하더라 
23   유다가 이르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24   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25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27   해산할 때에 보니 쌍태라 
28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매었더니
29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30   그의 형 곧 손에 홍색 실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의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

 

 

 

1. 죽음의 원인은 무엇인가?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취하여 결혼하였다. 그에게서 낳은 아들인 엘을 위하여 다말이라는 여인을 데려왔다. 성경은 다말까지도 가나안인인지를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그러할 가능성은 농후해 보인다. 그 여인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든 간에, 지금 커다란 문제가 생겼다. 여인과 동침한 자신의 아들들이 죽어나갔던 것이다.

 

우리 나라에도 “부정탄다”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이나 사건으로 인하여 부정적인 흐름이 생긴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유다의 시대에는 계대 결혼의 풍습, 즉 형사취수제가 있었다. 가계에서 형이 죽었고, 그 집에 자녀가 없을 경우, 동생과 잠자리를 같이 하여 형의 가계를 보존하여 주는 법이다. 장자 엘과 다말이 결혼하였으나, 자녀를 생산하지 못하고 엘이 죽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둘째 오난과 다말이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다. 오난은 형의 대를 잇게 하지 않으려고 땅에 설정하였으며, 이 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며느리 다말과 동침한 자녀가 연거푸 둘이 죽어나갔다. 사람의 시야로 보았을 때 엄연히 “부정탔다”고 말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이 일로 인하여 유다는 삼남 셀라가 성장하기까지 기다리라는 핑계로 다말을 수절시켰다. 

 

문제가 무엇인가? 유다는 아들들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 명확히 판단할 수 있는 시야를 가지지 못하였다. 성경은 “엘이 악하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셨다(7절)고 말한다. 또한 성경은 오난의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다”고 말씀하셨다(10절). 죽음의 명확한 원인은 다른 집에서 건너온 며느리에게 있지 않았다. 자신의 자식들이 악했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남의 탓을 하기가 쉽다. 특별히 자식의 경우,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 자식의 죄악을 잘 발견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은 명확하다. 나의 자녀를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평가도 분명하다. 자녀를 잘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하겠다. 공과 과를 잘 분별하여 지도할 수 있는 시야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2.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 대가

 

오난이 땅에 설정한것을 두고, ‘오나니즘’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본 용어를 자위행위를 대체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성경의 사실에 비추어 보면 잘 맞지 않은 용어로 보인다.

 

하나님께서 오난의 행위를 보고 그를 죽이기까지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오난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대 계승의 법을 무시하고 짓밟았기 때문이다. 물론 모세의 시절에 확립되는 이스라엘의 율법이긴 하지만, 당대에도 형사취수법은 통용되었고, 하나님은 그 법을 통하여 약한 자들을 돌보시기를 기뻐하셨다.

 

한 집안의 가장이 죽으면 집안이 흔들린다. 현대에도 그렇지만, 고대의 시절에는 훨씬 더한 문제가 발생했다. 여자들만으로는 집을 지킬 수도 없거니와, 재정을 마련할 방도를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구약에서 가난의 상징은 고아와 과부였다.

 

이를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동생을 통해 자손을 낳고, 유산을 상속받을 권리를 그 집안에도 허락해 주는 이 법을 허락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차자 오난은 아마도 그에게 돌아갈 유산이 아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다말에게 씨를 주지 않았다. 형수인 다말이 불쌍한 처지가 될 것을 알지만, 그에게 집안의 재산을 상속하여 주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악하다”고 결론지으신다. 두 아들의 악에 질세라, 시아버지 유다 또한 다말을 수절시키고 그녀를 친정으로 보낸다(11절). 과부의 가난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모습이다.

 

디모데전서는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는 자는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말한다(5:8). 야고보서는 가족뿐만이 아니라, 나의 주변에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이 바로 경건이라고 말한다(1:27).

 

-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붙여주신 자들을 돌아보고 있는가? 그들의 가난을 무시한 채 나의 잇속만을 챙기고 있지는 않은가?

 

 

3. 유다의 범죄

 

시간이 흘러 삼남 셀라가 장성하였다(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다말에게 그를 주지 않았다. 다말은 창녀로 변장하여 딤나 길 옆에 앉았다. 유다는 이를 보고 그에게 들어가 며느리와 동침한다. 다말은 유다에게서 증거물을 받고 그를 돌려보낸다.

 

다말은 가나안 여인이었다. 당대 가나안은 이쉬타르(후대의 아세라-아르테미스-비너스로 발전)를 섬기고 있었고, 이를 섬기는 신전 창기가 있었다. 유다는 에나임 문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이 문 또한 당대 가나안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기 위해 지어놓은 신전의 문을 가리킨다. 그리고 당대 가나안인들은 우상을 섬길 때 신전 창기들과 잠자리를 하여 신을 기쁘게 하는 풍숨이 있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짐작해볼 때, 유다는 지금 자신의 소출을 위하여 가나안의 우상을 섬기러 가는 중이었고, 종교적인 의식으로써 신전 창기에게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송병현 687).

 

야곱은 인생 가운데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되었다. 야곱이 벧엘에서 가족들에게 가르쳤던 하나님의 모습은 유다에게서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유다가 하나님 대신 우상을 사랑하며 자신의 성적인 순결을 버리는 동안, 요셉은 모진 고초를 당하면서도 거룩을 지키기 위하여 힘쓰는 장면이 다음 장에 등장한다. 결국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들어가 쓰임을 받게 되는 사람은 누구인가? 모세는 고도의 수사학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것을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 나는 오늘 무엇을 섬기며 살아가는 사람인가? 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집안에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대신 이방이 사랑하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가? 하나님께 대한 나의 정절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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