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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배달부/창세기 묵상 나눔

창세기 40장 1-23절 : 최악의 상황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작은 불빛

by 노목 2020.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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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요셉을 “꿈의 사람”이라고 말하는 목사님들의 설교가 이해되지 않았다.

요셉은 그저 꿈을 꾸었을 뿐이다. 꿈은 무의식의 표상이라고 하지 않는가? 내가 꾸고 싶어서 꿈을 꾸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꿈은 “꾸게 되는 것”이지 의도성을 가지고 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받은 꿈을 가지고 고통을 받는 요셉을 “꿈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목회를 하다 보니 요셉은 확실하게 꿈의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꿈이 없는 청소년들에게 비전을 물으면 어리둥절해한다. 황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무엇을 말할지 급조하기에 바쁘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저 그들에게 비전이 없을 뿐이다.

 

그러한 인생인 요셉에게 너무나도 추상적인 두 편의 꿈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요셉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고통스러운 나날이 13년동안 지속된다. 요셉의 꿈은 그에게 어떤 기능을 하고 있을까? 하나님은 옥에서 만난 두 관원장의 꿈을 통해, 요셉의 마음을 시험하시는 것이다. (요셉의 인생에 주어진 “꿈”이라는 도구가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한 해석; 앨런 로스 938-939)

 

 

 

1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2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4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5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9   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10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11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12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13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 
14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5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16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17   맨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18   요셉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19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 
20   제삼일은 바로의 생일이라 바로가 그의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그의 신하들 중에 머리를 들게 하니라 
21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22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1. 최악의 상황에서 자신의 달란트로 섬김

 

요셉은 꿈 꾸는 자였다. 그리고 요셉은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자였다. 요셉에게 주어진 계시 해석의 방법대로, 요셉은 꿈들이 자신에게도 성취될 것을 믿었다. 그는 당장에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것, 확정적인 무언가가 없어도 하나님께서 주신 두 번의 꿈을 신뢰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의 그 믿음을 달아보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하나님은 옥에 갇힌 요셉에게 각기 다른 꿈을 꾼 두 관원장을 보내심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요셉의 자세를 다시금 시험하신다. 그리고 이 시험은 요셉의 인생 가장 밑바닥에서 주어진 것이었다.

 

친위대장의 감옥이라는 말은 “학살자의 감옥”이라는 히브리어적 어근을 가진다. 사형수들이 모여있던 감옥이었을 수도 있으며, 살인자들이 모여있는 감옥이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요셉이 있던 감옥의 분위기는 쉽지 않았을 수도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은,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에게 자신을 나가게 해 달라고 청원하였다는 사실이다(14절).

 

어쩌면 절망중의 가장 밑바닥었지만, 요셉은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사용해 꿈을 해석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그의 성정과 배치되는 섬김이 아니었다. 그는 보디발의 집에서도 충성되어 일하였고, 형통케 하심의 은혜를 입었다. 그리고 그는 똑같이 지금 감옥에서도 섬기고 있는 것이다.

 

 

2. 인간적인 부탁과 하나님의 타이밍

 

하나님의 때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감옥으로 넣으신 이유가 있으셨고, 그 기간을 채우시는 모습을 보이신다. 그러나 그 기간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는 가혹하고 힘든 기간이다.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요셉은 꿈의 해석 가운데 자신의 소망을 덧붙인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해 주세요.

바로에게 내 사정을 말해주세요.

이 집에서 나를 좀 건져주세요.”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이러한 요청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게 된다. 요셉의 요청은 잊혀졌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그의 달란트는 종국 바로의 꿈을 들은 관원장의 입에서 다시 기억된다. “기억하지 못하고” (23절) 또 다시 “기억하나이다” (41:9)의 교차적 반복은 이러한 구도를 더욱 부각시킨다.

 

하나님의 시련은 건너가야 하는 것이며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나의 뜻으로 이 시련의 강에서 일찍 빠져나오고자 하여도,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풀리지 않는다. 고통스러운가? 하나님께 잠잠히 그 뜻을 묻자. 그리고 이 시련의 삶에서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연단하시는지를 바라보며, 나에게 필요한 요소들을 정립해 나아가자.

 

- 나는 나의 팔의 힘과 내 입의 힘을 과신하고 살아가지는 않는가?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시험을 어떠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3. 요셉의 해석이 적중함

 

하나님께서 주신 해석자로서의 은사는, 이 옥중에서도 찬란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두 관원장은 요셉의 해석대로 되었다. 비록 요셉은 이 일을 통하여 감옥에서 건짐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를 사용하고 계시다는 사실은 그에게 엄청난 영적인 자신감을 선사해 주지 않았을까?

 

요셉은 꿈을 해석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해석자”라는 사실을 여과없이 드러낸다(8절). 이것은 그의 믿음이었고, 그 믿음은 두 관원장의 상태를 통하여 확증되었다. 하나님은 요셉의 해석을 통해 요셉의 믿음을 달아 보셨지만, 요셉은 이를 통해 자신에게 일찍이 주어졌던 두 꿈을 기억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비참한 현실의 옥중에서 다시금 그 꿈을 주신 하나님, 그리고 그것을 성취하실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을 것이다.

 

믿음의 길이란 이러한 것이라 생각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기 위해 정련하시는 그 과정에서, 아름답게 빛나지만 너무나도 조그마하게 보이는 작은 불빛 한 줄기를 따라서 조용히 걸어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인생이리라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사용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구하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의 용도에 맞게 정련될 필요가 있다.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힘이 들어도, 잠잠히 그 길을 걸어가는 모든 자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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