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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배달부/창세기 묵상 나눔

창세기 37장 18-36절 : 되풀이되는 죄악의 역사

by 노목 2020. 8. 20.

Ⓒ Joseph the Dreamer, Amy Steedman

 

 

구약의 역사를 총찰해보면, 죄악의 삶이 반복되는 장면을 연거푸 발견한다.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저지른 죄악은 두 번이나 되풀이 되었고, 이는 이삭에게서도 여전히 발견되었다. 야곱은 속임으로써 자신의 권리를 취하였으나, 속임을 당함으로써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잠시 잃게 되었다.

신자들은 구원받았으니, 이 땅에서의 죄악은 회개로 언제나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하나님은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행동과 결정 모두를 중요하게 여기신다. 어쩔 때는 그것을 다시 되갚으시며, 어쩔 때는 그것을 계수하시어 뛰어넘게 만드신다.

 

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21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22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28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29   르우벤이 돌아와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30   아우들에게로 되돌아와서 이르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 
31   그들이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32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 
33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34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35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36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1. 군중심리의 무서움

 

아무리 배가 다른 형제라 할지라도, 요셉의 형제들이 홀로 요셉을 죽이기는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명이 모여 그들의 시기심을 내어 놓으니, 요셉을 향한 악한 마음은 오히려 증폭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군중심리란 이러한 것이다. 혼자 있을 때 저지르기 어려운 죄악들도 여럿이 있을 때는 더 쉬워진다. 가정과 교회, 일터와 친구 관계 등 상처받은 이들이 모여서 쓴 소리들을 내면 그 쓴 뿌리들의 향이 더 짙어지는 법이다.

 

- 나는 죄악의 소리를 증폭시키는 자인가? 아니면 커져가는 쓴 소리들을 제어하려 하는 자인가?

 

 

2. 리더십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 와중에, 맏이인 르우벤이 동생들의 마음을 다독이려 낸 꾀는 의미심장하다. 르우벤은 장자로서 책임감을 느꼈다. 그는 요셉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가 나중에 야곱에게 돌려주려 하였다. 성경은 그의 의도가 선하였음을 밝힌다.

그러나 종국에 형제들을 설득시킨 것은 유다의 이야기이다. 성경은 유다도 선한 의도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애매한 진술을 한다. 유다는 표면적으로는 “혈육의 피를 흘리지 말 것”에 대해서 말하였다. 하지만 이는 큰 악을 작은 악으로 덮는 격이다. 골육을 대상으로는 둘 다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형제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실질적인 리더십을 가진 이는 유다였다. 르우벤의 말이 지엄한 이야기였더라면 르우벤이 없는 자리에서 유다의 언변이 그렇게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르우벤의 말이 왜 이렇게 업신여겨졌을까? 아마 르우벤이 일전에 가정에서 보인 행동에 그 리더십 상실의 이유를 들 수 있지 않을까? 그가 아버지의 첩과 동침하였던 죄(창 35:22)를 본 형제들이, 그의 영향력을 줄여나갔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르우벤의 선한 의도는 영향력을 상실한 채 요셉은 팔려 나가게 되었다.

 

- 나는 얼마나 영혼들의 죄악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나와 함께 하는 이들이 죄악을 저지르려 할 때, 그들의 마음, 쓴 뿌리들과 얼마나 맞서 싸우려 하고 있는가? 나는 큰 악을 다른 악으로 덮으려 하고 있지는 않는가?

 

 

3. 커져가는 죄악들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넣은 형제들은 그 옆에서 음식을 먹는다. 그러나 요셉이 떨어진 구덩이에는 물조차 없었다. 이렇게 잔학한 이들은 이스마엘 사람이라고도 불리는 미디안인들에게 요셉을 은 이십에 팔아치운다. 이것은 당시 노동자들이 2~3년은 일해야 받을 수 있는 품삯으로써, 매우 큰 돈이었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동물의 피에 적시고 아버지에게 보여줌으로써 거짓 알리바이를 만들었다. 이 때 사용한 동물이 염소이다. 아버지 야곱이 이삭의 손에서 장자권을 얻을 때 사용한 동물또한 염소였다. 이것을 가문에 흐르는 저주와 같은 식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하나님의 섭리적인 측면에서, 수면 아래로 잠기었던 야곱의 죄악이 다시금 상기되는 하나의 장치로 보아야 할 것이다.

꾀를 내어 자신의 이득을 여러번 취하였던 인물인 야곱은, 늙어서는 자신의 아들들에게 이렇게 속임을 당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우리가 범한 죄의 값을 이러한 방식으로 갚으시는 것을 볼 때, 신자들의 현재적 삶 또한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기억하게 된다.

 

- 요셉의 형제들의 죄악은 죄악을 낳았다. 나는 작은 죄악으로 시작하여 죄악으로 나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나의 삶에서 다시 되갚음을 받을만한 죄악의 요소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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