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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배달부/창세기 묵상 나눔

창세기 5장 1-5절 : 아담의 삶과 죽음

by 노목 2020. 8. 18.

Photo by Ravi Roshan on Unsplash

 

 

죄는 이 땅에 죽음을 가져왔다.

죄로 인하여 아담과 하와는 필멸적 존재가 된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후손을 통하여 이 땅에 생명이 존속할 수 있도록 만드셨다. 사랑하기 위해 만드신 하나님의 형상이 계속해서 흘러갈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1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4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1. 셋, 아담의 적법한 계승자

 

직전 장에서 등장하였던 가인의 계보와 비교하며, 본장은 셋의 계보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특이한 점은 본문은 아담의 적절한 계승자가 가인이 아니라 셋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아담의 톨레도트를 통해 앞전장들을 다시 정의하는 5장의 도입부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아담이 셋을 통하여 생명을 이어간다고 말한다.

계승자는 장자가 아니다. 먼저 태어났다고 족보의 우선권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다. 가인과 셋의 계보에서도, 각각의 종적인 족보에서 이름이 적혀진 것은 장자라는 증거가 없다. 먼저 태어났으니 당연히 축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신앙은 옳지 않다. 에서가 그러하였고, 유대교의 많은 이들이 선민사상 가운데 이러한 실수를 저질렀다. 현재를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만, 족보를 계승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족보에 이름이 기록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

 

 

2.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것

(1) 복을 주시고

 

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견해는 성경을 총찰해야 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으나, 지금까지의 맥락에서는 모호하다. 그러나 본 구절은 사람의 계보의 기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밝히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첫번째의 것이 복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을 창 1:28의 반복이라고 볼 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복은 이 땅을 다스리며 이 땅에 충만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유일하게 복을 받은 존재이다. 이것은 인간을 사랑하시며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나타낸다.

 

 

(2)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이어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시는 장면이 등장한다. 일컫는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소유를 주장하는 개념에서 사용되었던 단어였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의 생물의 이름을 짓는 권한을 주셨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의 모든 것들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아담을 먼저 부르신 분이셨다. 인간은 하나님의 소유이다.

우리들은 종종 자신의 생명을 자신의 소유라 생각할 때가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많은 형태의 복을 온전히 자신의 것, 즉 자신의 노력에 기인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 기인한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진정한 복으로 채워갈 수 있을 것이다.

 

 

3. 생명, 하나님의 형상

 

모양과 형상에 대한 논의는 고래로부터 계속되어 온 주제이다. 여기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은 차치하고, 본문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 대한 계승의 방법을 언급해야 하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대로 아담을 창조하셨으며, 후사를 두는 방식을 통하여 이것이 온전히 전달되게 하셨다는 것이 오늘의 본문에 언급된다. 3절은 아담이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고 말한다.

사랑의 교제를 위하여 삼위일체 가운데 충만한 사랑을 공유하시던 하나님께서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창설하시고 그와 사랑을 나누고자 하셨다.  죄로 인하여 인간에게 죽음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자녀라는 방식을 선물로 주시어 하나님의 형상이 계속 이 땅에 존재하게 하셨던 것이다.

 

 

(1) 나는 생명의 전달자이다.

개별자로서의 나는 100년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 가운데 속하는 생명의 전달자이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이며,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전달하는 존재이다.

 

 

(2) 단지 육적인 생명의 교두보가 될 것인가, 영적인 생명을 흘려보내는 자가 될 것인가?

그냥 생식하여 자손을 번성시키는 존재라면, 나는 두명의 자녀를 낳았으니 이에 만족하고 죽음을 선택하여도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소명은 영혼의 생명을 담보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은 여전히 존재하나, 그것은 본성적으로 처참히 짓밟힌 채 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니 나의 삶이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임받는 것은 얼마나 당연한 일인가! 육적인 생명 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생명이 자리잡도록 도와야 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4. 적용과 결론

 

  • 의미있는 인생을 살아야만 한다.

하나님께 복을 받은 존재로서의 나는, 하나님의 소유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성경은 명확하게 가인의 위치와 셋의 위치를 구별한다. 나는 생명을 전달하는 사람이지만, 어떠한 계보를 일구었다고 평가될까?

 

  • 육체적인 생명을 흘려보내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나에게서 난 두 자녀는 나의 생명의 계승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육체적인 생명이 흘러간다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그들에게 계승되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한 그들을 제외하고서라도, 나에게 주어진 사람들에게 영혼의 생명을 전달하지 못한다면, 나는 목사라 평가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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