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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배달부/창세기 묵상 나눔

창세기 6장 9-12절 : 의인의 삯

by 노목 2020. 8. 18.

Photo by Clem Onojeghuo on Unsplash

 

 

어렸을 때 히브리서의 믿음장을 묵상하며, 이들의 찬란함에 경탄하였던 기억이 있다. 교회의 종탑에 홀로 앉아 다니엘과 요셉을 묵상하며, “하나님 나도 지금 이들과 같은 신세이니, 이들과 같이 살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드리기도 하였다. 총리였던 이들의 삶이 너무나도 반짝여 보였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노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마음을 가졌다. 아름다운 사람. 순종의 사람. 그러나 자라나면서 그를 묵상하니 그의 삶은 전혀 녹록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삶만 그랬겠는가! 이 땅에서 거룩을 좇았던 모든 이들의 삶이 다 그러하였다. 그러니 십자가의 길은 좁은 길이다.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1. 당대에 의로웠던 노아

 

노아는 의인이었다. 그러나 어찌 인간이 스스로의 의로 온전해질 수 있을까! 그렇기에 성경의 기자는 노아의 의로움에 조건을 더한다. “당대에”

당대에 완전하다는 의미는 많은 함의를 지닌다. 먼저, 논리적으로 볼 때 그의 완전함은 훗날 타인의 의로움과 비교해서는 보다 적은 종류의 완전함일 수 있다. 그렇기에 여기서의 “의인”이라는 말은 성경적 “의”의 개념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두 번째로, 당대의 완전함이라는 개념은 우리 삶의 양태와 목표를 한정한다. 이 세상에 나고 자란 사람들 중에서 시대의 자녀가 아닌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대가 그에게 먹인 것에 대한 소산을 내며 자란다. 문화와 습성, 언어와 생각 등 모든 것이 시대의 산물이다. 우리는 그 가운데 조금 더 선하거나, 조금 덜 선하게 살아갈 뿐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눈에 우리의 인생을 볼 때에, 우리의 작은 악이 얼마나 크게 보이겠는가!

그러나 그 작은 차이가 인류 역사를 바꾼 초석이 되었다는 것을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증거한다. 시대의 아들이지만, 노아는 그 시대를 밝히는 삶을 온전히 살았고, 그것을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하였다. 그렇기에 그는 시대를 변혁시키는 도구로 훌륭히 쓰임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완전함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창세기의 저자는 그가 당대의 완전함을 소유하게 된 것이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고 명확히 지정하여 말한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것이 “당대의 완전함”을 만들어낸다.

 

 

2. 하나님과 동행함의 삯

 

그렇게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는 결국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다. 의인 노아는 성경의 곳곳에서 인용되며 믿음의 선진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알듯이, 의인의 값은 결코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산 위에 방주를 지어야만 했다. 얼마나 지었을까? 앞서 묵상한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이 120년 뒤로 정해진 것이라면, 노아는 최대 120년동안 방주를 지었던 것으로 예측해볼 수도 있다(아들들을 낳기 전에 건조를 시작). 세 아들을 낳고 난 뒤에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진 것으로 본다면, 노아가 500세가 된 후에 그의 자손들을 낳았고(5:32), 그가 자손들을 낳은 이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6장에 그려지니, 대략 80~90년 정도로 예측해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긴 시간이다. 신학교 입학 발표를 두달 기다리는 것도 미칠 지경인데, 그에게 그 시간은 어떠한 의미를 가졌을까.

그리고 그는 방주를 건설한다. 그가 산 위에서 방주를 건설하였는지, 아들들과 함께 건설하였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쨌든 노아는 어마어마한 건설의 작업을 단독적으로 시행한 것이다.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리고 타인의 비난은 얼마나 그의 자존심을 짓밟았을까?

 

이것이 의인의 삯이자, 그의 삶이다.

하나님께 선택받았기 때문에 거룩을 알게 되었다. 또한 거룩한 삶을 살아냄으로 하나님께 선택된다(시 33:12). 긍휼하심을 입어 선택된 자의 삶이라 하여도 눈에 보이는 선물같은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시선을 가지니 죄가 보이고, 그 죄가 나를 괴롭게 하니 싸워야 한다. 신자의 삶은 본디로 고단하게 되어있다.

노아는 순종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순종은 절대 달콤하지 않았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순종하며, 그 날이 올것을 믿음으로 받으며, 꿋꿋이 시대적인 사명을 완수한 것이다.

 

 

3. 적용과 결론

 

하나님은 11절과 12절에서 다시 땅의 부패함을 보신다. 그러나 이 시대의 죄악은 필시 지금의 죄악보다 더 융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인내의 시절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 시대에 빛을 비추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왜 이 시대에 태어났을까?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목적은 시간과 장소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는 나의 시대를 위하여 태어난 사람이다. 시대의 아들이니 나도 죄악에 휩쓸려 가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시대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대로 힘써 이 시대의 완전한 자가 되도록 달려가야 할 것이다.

 

  • 순종은 어려워도 걸어가는 것이다.

의인 노아는 의인의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믿음의 길을 걸어갔다. 그에게 주어진 방주 건설의 기간은 죄로 가득한 세상에서 엄청난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한다. 하나님은 그것을 믿음으로 받으신다.

 

#말씀묵상 #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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