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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배달부/창세기 묵상 나눔

창세기 6장 13-17절 : 방주, 공의와 사랑의 교차점

by 노목 2020. 8. 18.

정치가로서의 변신을 꾀한 에반의 집에 고페르 나무가 배송되었다. 하나님(2계명!)과 나란히 앉은 에반. Ⓒqctimes.com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1. 공의와 사랑의 교차점

 

노아의 방주 사건을 총찰하며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여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앞서 본 것과 같이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을 보셨다. 그리고 그것을 참을 수 없으셨다. 넘실거리는 죄악은 하나님꼐서 그들을 심판하셔야 할 충분한 이유를 마련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들 중 첫 번째의 속성, 거룩의 실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그 이면에 있지만 여전히 당신의 속성이신 사랑 또한 실현하셔야 하셨다.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은 인간을 즉시 심판하지 않으셨다. 노아라는 한 인간을 뽑으시고, 그에게 경건한 사명을 맡기시고, 예비적 기간을 두신 이후에 나머지 인생과 땅의 모든 것들을 치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그리고 나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시대에 잔존하는 죄악을 바라보시며, 그것에 대해서도 역겨움을 느끼시지만 참으신다. 남겨진 죄악이 이 땅에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참으시는 주님께서는 동시에 경건한 자들의 살 길을 내신다. 그것은 노아로 예표되어 신약을 통해 구체화된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는 오신 예수님을 신뢰함으로 우리의 마음에 방주를 삼을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2. 사람의 순종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당신의 상반되는 두 속성을 어떻게 실현시키실까? 너무나도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순종을 통하여 그것이 이루어짐을 볼 수 있다. 한 인간의 순종이 가장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두 속성의 매개체가 된 것이다.

 

SF영화의 진부한 클리셰들 중의 하나로, 창조주가 이 땅이 더러우면 그냥 모조리 밀어버리고 두 번째 아담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면 안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범죄를 전혀 예지하지 못하셨을까? 인간의 선택이니 예지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어떤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말하는대로 가능한 중간적 지식이라도 미리 가지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셨을까? 전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 땅에 수행하셨다. 왜냐하면, 에드워즈가 말하는 것과 같이, 인간은 삼위일체 가운데 나타난 사랑의 충만한 발현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악의 삯이 이 땅에 도래할 것을, 그래서 당신이 사랑하는 첫 인류로부터 아픔을 겪게 되실 것을 분명히 아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로 인하여 이 땅에 존재할 수 많은 인생과 그들의 아름다움을 그 가운데에서 발견하셨다. 흩어지는, 영속적이지 않은 아름다움이지만 수많은 인생으로 분화된 인류의 삶 가운데에서 가치를 발견하신 것이다. 그 가치는 하나님 당신 안에 존재하였던 창조의 이유, 사랑이었다.

 

하나님께서 당신 스스로 재창조의 사역을 이루지 않으시고, 노아라는 사람의 작은 순종을 통하여 이것을 이루신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방주를 만드실 능력이 없으셔서 노아를 시키셨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에덴에 선악과를 없애실 능력이 없으셔서 선악과를 남겨놓은것이 아니듯 말이다. 하나님은 노아의 작은 순종을 통해 사랑의 계약이 상호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3. 방주의 모양

 

무슨 배가 이렇게 생겼을까! 잠수함인가? 창이 있으니 잠수함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그냥 길쭉한 사각 상자같은 모양이라니 어색하기 그지 없다. 혹자들은 이것을 보고, 조선학적 지식이 없는 고대시대의 허무맹랑한 이야기이니 이렇게 적혀져 있을수도 있겠다며 조롱하기도 한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어떤 학자는 실제로 이 비율의 배가 튼튼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도 하였다.

 

특기할 점은,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이 배의 설계도를 말씀하셨을 때, 돛이나 노, 방향타와 같은 것은 아무것도 말씀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다만, 작은 창과 드나들 수 있는 문을 말씀하셨을 뿐이다.

 

이것은, 홍수 시대의 우리들이 의지할 것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사방이 물로 가득찼다. 홍수의 기간동안 쏟아져내린 엄청난 물로 인하여 사방이 물에 잠겼다. 어디를 돌아보아도 물과 휘몰아치는 폭풍우밖에 없는데, 돛이 무슨 소용이며 노와 방향타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저 그 방주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대로 갈 뿐이다.

 

이 시대도 여전히 잔존한 홍수의 물결이 가득하다. 죄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많은 문화들, 하나님을 대신해 사랑하게 만드는 우상들이 즐비한 시절에 스스로의 힘으로 노를 젓거나, 자신의 지혜로 바람길을 알아보려는 모든 시도들은 절멸될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인 것이다.

 

 

4. 적용과 결론

 

  • 하나님께서는 지금을 살아가는 나를 가치롭다 여기신다

하나님이 남은 자 모두를 절멸하시지 않으신 이유는, 지금을 살아가는 후손들인 우리들의 인생이 여전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죄가 없어서 객관적으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가리켜 사랑하기 위해 존속시켜야 할 이유가 있는, 가치로운 존재라고 명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가치로운 인생이다.

 

  • 작은 순종을 하나님께 드리자

노아가 건설한 방주는, 물론 인간의 편에서는 원대한 건축물이었겠지만, 하나님의 편에서는 너무나도 작은 사역이었다. 그러나 그 순종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와의 사랑의 관계를 다시 확인하셨다. 내가 오늘 하나님께 드릴 믿음의 반응은 무엇인가.

 

  • 나의 방향타를 하나님께 맡기자

방주에는 방향타가 없었다. (개인적으로)지금의 나 또한 내가 가진 모든 방향타를 잃어버렸다.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고 유학의 길을 마음먹고 칼을 빼어들었는데, 코로나라는 변수가 찾아와 버렸다. 그러나 나는 나의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여전히 신뢰한다. 하나님꼐서 나의 길을 예비하시고 이끌어 가실 것이다.

#말씀묵상 #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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