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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묵상/책 읽는 개미

[여성] 여성들의 종교개혁 by 레베카 밴두드워드, 지평서원 ... 책 소개와 서평

by 점보개미 🐜 2020. 12. 11.

안녕하세요!

책 읽는 개미, 점보개미🐜 입니다. :D

 

 

오늘은, 제가 정말로 재미있게 본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너무 개취라 재미는 저만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여성들에게 필요하고, 또 분명히 유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그런 책입니다.

 

 

 

여성들의 종교개혁

Reformation Women : Sixteenth Century Figures Who Shapes Christianity's Rebirth

레베카 밴두드워드 Rebecca VanDoodewaard 지음, 이제롬 옮김

지평서원, 2020. 입니다.

 

 

 

https://youtu.be/aWpp3apEexY

 

 

이 책은 이렇게 생겼구요,

 

 

 

 

저자 소개는 이렇습니다.

 

 

 

 

 

목차의 구성은 이렇게,  

들어가는 말 - 여는 글 - 12명의 여인들 소개 - 나가는 말 순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이구요,

오늘은 내용의 요약이 아니라 저의 서평으로 이어집니다! :)

 

 


 

 

 

<여성들의 개혁주의>

 

 

우리집 아이들이 내게 와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안나(안아)!”이다. 아이들은 시도때도 없이 “안나!”를 외친다. 아파도 외치고 슬퍼도, 무서워도, 속상해도 외친다. 때로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때가 되었다며 외칠 때도 있다. 막 말을 배우는 아기 때부터 우리집 아이들은 이 단어를 외치면 언제든 엄마가 자신을 품에 안아준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의 ‘안나’가 단순한 포옹이 아니라 ‘엄마의 따스함’에의 요구임을 안다. 이 세상에는 오직 엄마만이 줄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오늘날의 페미니즘은 ‘엄마’라는 이름을 여성들이 뛰어넘어야할 ‘한계’로 인식한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부여된 여성의 역할은 지금껏 그들이 추구해온 자유와 권리, 존엄성, 그리고 가치를 침해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의 역할은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도태의 원인이 된다고 여긴다. 그러나 여성의 역할에 대한 이러한 반감은 죄의 근원이 되는 자기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성의 존엄성 추구라는 명목 하에 하나님께서 여성에게 부여하신 질서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로마 가톨릭 시대 역시 여성들의 역할이 성경적 기준에서 어긋나 있었다고 말한다. 때문에 초기 개신교는 도망친 수녀들, 신비주의에 빠진 여성들, 로마 가톨릭을 따르는 강력한 여왕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어긋난 여성성과 싸워야 했다. 그러나 개혁주의와 함께 여성들에 관한 성경적 이해가 발전함에 따라 여성들은 성경적 여성성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아가 여성성을 발휘하며 교회를 섬겼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테두리 안에서 여성이라는 존재로 열매맺는 삶을 산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의 저자 레베카 밴두드워드는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 여성들의 삶에서 성경적 여성성과 그 역할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한다. 특히 교회사에 있어 최고 격변의 시대였던 종교개혁을 통해 여성들의 삶이 개신교의 태동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고 또 어떻게 열매 맺었는지를 이 책에서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모두 우리에게는 무명과 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자신이 놓인 상황 가운데 최선을 다해 주어진 삶을 살았다. 그들은 교회를 세우며 주변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았다. 남편이 신자인 경우 아내로서 남편의 일에 함께 헌신하였다. 남편이 신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녀들은 강인하나 기품있게 꿋꿋이 바른 길을 따랐다. 이들의 삶에 있어 각자 다른 성품, 신분, 재능은 바른 삶의 도구가 되었으며 처한 환경의 열악함을 극복하게 하는 무기가 되었다.

 

 

취리히의 종교개혁자 불링거의 아내인 안나 아들리슈바일러는 돕는 배필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았다. 그녀는 적은 남편의 보수로 검소하게 살림을 꾸리며 많은 가족과 함께 자신의 집에 머무는 여러 손님들을 섬겼다. 그녀의 집에는 항상 목회자 후보생, 개신교 피난민, 불링거를 찾아온 외국의 저명인사들이 머물렀고 그들은 안나의 집에서 안식과 위로를 얻었다. 그리고 이러한 안나의 섬김은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취리히 전체로 흘러갔다. 거리의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을 돌보는 안나의 사랑에 그녀는 취리히 사람들은 물론 유럽 각지에서 ‘취리히의 어머니’로 불리웠다. 오늘날 여성으로서 가장 큰 한계라고 여겨지는 ‘돕는 배필’이라는 역할은 안나에게는 한계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돕는 배필’과 ‘어머니’로서의 섬김을 통해 풍성한 삶의 열매를 맺었다.

 

물론 본서는 여성의 삶으로서 ‘돕는 배필’의 역할만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어머니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에게서 교회 개혁의 사명을 이어받은 잔 달브레는 나바르의 여왕이었다. 본서는 그녀를 교회사에서 가장 강인한 여성이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정작 여성으로서 잔은 누구보다 아픔이 많은 삶을 살았다. 칼빈주의를 나바르의 종교로 공인하고 개신교 교회를 세우는 그녀를 제지하기 위해 로마 가톨릭은 그녀에게서 남편을 빼앗았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남편과 종교적, 정치적으로 대립해야 했을 뿐 아니라 아내로서 남편의 바람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리고 하나 뿐인 아들과도 오랜시간 헤어져 지내야만 했다. 잔은 납치와 암살의 위험, 전쟁, 약해진 건강, 경제적 어려움 등 어렵고 힘든 상황 가운데 그녀의 평생을 보냈다. 그러나 그녀는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아픔에 주저앉지 않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 용맹하게 싸우는 여전사의 삶을 살았다.

 

올림피아 모라타는 여성으로서 많은 결핍의 삶을 살았다. 평생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가정을 꾸려가야 했고 불임으로 자녀의 기쁨을 누리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에게 누구보다 신실한 믿음의 본이 되는 삶을 살았다. 그녀는 신고전주의와 인문주의의 시대에 탁월한 학자로서 이른 나이에 널리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그녀는 신앙을 이유로 학자로서의 일을 빼앗기고 궁중에서 내쫓겼다. 그리고 개신교 교회를 향한 로마 가톨릭의 공격에 결혼 후에는 내내 피신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그녀는 약탈과 기근 속에서 자신의 저작들을 잃었고 결국 건강까지 잃고 짧은 생애를 마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불안정한 상황 가운데도 그녀는 시편을 번역하고 시를 지었으며, 끊임없이 동역자들을 깨워 세우는 편지를 썼다. 그리고 동생을 가르치고 공주를 권면해 기독교 박해에 반대하게 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그녀는 자신이 처한 결핍의 상황에 갇히지 않고 매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감당함으로써 시절을 좇아 열매맺는 삶을 살았다.

 

이 책은 이렇게 모두 다른 모습의 삶을 열심히 살아낸 종교개혁기 여성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지위와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환경과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외면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이들은 모두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드신 ‘여성’으로서 최대한의 여성성을 발휘하며 살았다.

 

이들은 모두 이 땅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자 하는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 여성들은 자신이 처해진 상황과 환경에서 자신이 해야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신실하게 감당했다. 이들은 가정을 돌보고 신앙으로 자녀들을 가르쳤으며 힘을 다해 사람들을 보살피고 섬겼다. 육신의 어머니 역할을 넘어 영적인 어머니로서 이 세상에서 오로지 어머니들만이 낼 수 있는 아름다운 체취를 남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 여성들의 삶에 있어,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결코 뛰어넘어야 할 한계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여성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여성성은 오히려 그들이 인생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하는 도구와 방식이 되었다. 하나님이 주신 여성이라는 특징으로 그들은 오히려 더욱 풍성한 열매를 남기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만물을 그분의 완전한 섭리 가운데 창조하셨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리고 그분이 세우신 아름다운 질서를 따라 살게 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어진 방식, 이 질서는 하나님의 성품에 따라 우리에게 선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사55:8). 그리고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그 선하심을 발견하며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이 특권을 사용하여 열매맺는 삶을 살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여성’이라는 것이 갑갑한 올무처럼 느껴지는가? 여성으로서 주어진 일들이 특권이 아니라 우리 삶에의 한계처럼 느껴지는가? 이러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를 여성으로 지으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회복이다.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의 여성됨이 우리에게 큰 특권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여성성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특권과 능력으로 보다 힘있게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 열매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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