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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배달부/창세기 묵상 나눔

창세기 4장 1-5절 : 가인과 아벨의 차이는?

by 노목 2020. 8. 16.

Cain and Abel, Julius Schnorr von Carolsfeld, 1860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넘어가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지에다 동네 지도를 그려오는 숙제였습니다. 등고선도 그리고, 꽤나 정밀하게 그리려고 많이 노력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큰 전지에 무언가를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는 정확한 측량이 필요합니다. 1도가 틀어져도, 샤프가 한번 넓은 종이를 횡단하고 나면 몇 센티가 차이나는지요.

 

처음에는 비슷해 보일지라도, 끝이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된 것에는 이유가 반드시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경우도 매 한가지입니다. 이들에게는 무슨 차이가 있었을지, 한번 살펴봅시다.

 

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1. 이름의 차이

 

가인(소유, 획득) / 아벨(숨, 허무)

아담은 미래를 예견하고 그들의 이름을 지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이름과 같은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2. 추구한 것의 차이

 

가인(농사하는 자) / 아벨(양 치는 자)

혹자가 말하듯, 농업과 목축업이라는 다른 직업에 종사했다는 것이 제사의 차이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습니다.

피가 흐르는 고기를 제물로 드려야만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면, 소제와 같은 가루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겠지요. 게다가 이 시절은 아직 제사의 개념도 제대로 확립되고 있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본 구절은 그들이 살아왔던 인생을 통틀어 추구해왔던 것에 대한 차이를 드러내는 말씀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욱 타당해 보입니다.

가인을 설명하기 위한 "농사하는 자"를 살피면, "땅에게 봉사하는 자"로 해석되는것이 더 올바릅니다.

아벨을 설명하기 위한 "양 치는 자"를 살피면, "양들을 먹이는 자"에 더 가깝지요.

 

소유와 획득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가인은 "땅에게 봉사하는 자(원어적 의미)"의 삶을 살게 되었고, 허무라는 이름을 가졌던 아벨은 "양들을 먹이는 자"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주고 싶은 걸까요? 

 

 

3. 하나님의 관점의 차이

 

1) 타이밍

"세월이 지난 후에(그리고 날들의 끝으로부터 이 일이 발생했다)"

성경은 이 제사의 사건은 우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갑니다.

날들에는 끝이 있고, 그 끝을 계수하시는 분께서 그것을 정하셨고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 끝을 정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후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평가가 단회적인 제사, 즉 한번 드린 제사에 대한 평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말하기 위해서 본 구절이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흠향 사건은 제사의 제물과 더불어 가인과 아벨, 그들이 살았던 삶의 기간에 대한 평가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2) 드린 것

가인(땅의 소산) / 아벨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

우리는 그들의 직업이 무엇이든, 하나님이 정하신 삶의 기간에 무언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여기에서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그들의 제물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인은 그저 자신이 생산해낸 "땅의 소산"만을 드렸지만, 아벨은 그것에 정성을 기울였음을 성경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아름답고 좋은 것)"을 드렸습니다.

 

3) 결과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이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을 명확하게 둘로 구분하여 진술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은 "평가의 기간을 정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보고 계셨고, 그것 모두를 받으실 것인지 아닌지를 선택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물의 가치는 그 삶에서 나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땅의 것을 좇으며 살았던 가인의 제물은 그저 그의 인생에서 떨어져 나온 하나의 소산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하나님을 위한 제물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의 첫 것을 드렸을 때에, 하나님은 모두를 받으신 것으로 쳐 주셨습니다.

 

 

4. 적용과 결론

1)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 날, 하나님이 분명히 우리의 인생의 무게를 달아보실 때가 있으실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받으심직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2)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어떠한 것이 되어야 하는가?

단순히 제물을 드리는 것으로 합당한 자세를 취한다 말할 없습니다.

제물은 반드시 삶을 담게 되어있습니다.

헌신된 삶을 드리지 않고서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온전한 제물을 드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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