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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7장 1-17절 : 요셉의 순종 창세기는 요셉의 이야기로 마지막 족보의 역사(톨레도트)를 기록한다. 약속의 땅에 들어오기는 하였으나, 아직 완전한 성취가 일어나지 않았다. 자녀들이 많기는 하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 만큼 많지는 않다. 하나님의 약속은 시작되었지만 아직 성취된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이 땅에서, 야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너무나도 우리의 삶과 동일한 이 고민 가운데, 요셉으로 퍼져가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다시 시작된다. 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2020. 8. 19.
슐라이어마허와 조나단 에드워즈의 감정 개념 연구 - 종교론과 신앙감정론을 중심으로 슐라이어마허와 조나단 에드워즈의 감정에 관련된 개념 연구 ―『종교론』과 『신앙 감정론』을 중심으로 the Study of Concept Related 'Emotion' in Schleiermacher and Jonathan Edwards ― Focusing on the On Religion and Religious Affection ◀ 국 문 초 록 ▶ 본 논문은 슐라이어마허와 조나단 에드워즈가 감정과 관련해서 사용한 개념들을 비교함으로 내재적 신학의 올바른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목적을 가진다. 슐라이어마허는 형이상학과 도덕이 차지했던 종교의 영역을 직관과 감정으로 재정의했다. 그는 종교를 인간이 우주, 즉 신을 직관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이로 인해 감정이 생겨난다고 보았다. 슐라이어마허의 인식론적 틀에서.. 2020. 8. 18.
창세기 6장 18-22절 : 노아와 맺으신 언약 어렸을 때의 나는 학교에서 단체기합을 받는 것이 너무 싫었다. 이는 그 원인이 나에게 있지 않았기에 몹시도 불쾌한 일이었다. 친구가 떠들었는데, 반의 다른 아이들이 수업 태도가 좋지 않았는데, 나를 비롯한 모든 친구들이 다 책상위에 무릎을 꿇고 허벅지를 맞아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신앙을 처음 접하던 중학생의 나는 원죄의 법칙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담이 지은 죄가 어떻게 나에게 전가가 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죄의 지배 아래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내가 그 죄 때문에 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 또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체기합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불쾌감을 원죄의 교리를 처음 접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 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 2020. 8. 18.
창세기 6장 13-17절 : 방주, 공의와 사랑의 교차점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1. 공의와 사랑의 교차점 노아의 방주 사건을 총찰하며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여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앞서 본 것과 같이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을 보셨다.. 2020. 8. 18.
창세기 6장 9-12절 : 의인의 삯 어렸을 때 히브리서의 믿음장을 묵상하며, 이들의 찬란함에 경탄하였던 기억이 있다. 교회의 종탑에 홀로 앉아 다니엘과 요셉을 묵상하며, “하나님 나도 지금 이들과 같은 신세이니, 이들과 같이 살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드리기도 하였다. 총리였던 이들의 삶이 너무나도 반짝여 보였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노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마음을 가졌다. 아름다운 사람. 순종의 사람. 그러나 자라나면서 그를 묵상하니 그의 삶은 전혀 녹록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삶만 그랬겠는가! 이 땅에서 거룩을 좇았던 모든 이들의 삶이 다 그러하였다. 그러니 십자가의 길은 좁은 길이다.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11.. 2020. 8. 18.
창세기 6장 5-8절 : 그들의 제각기 다른 시선 구약은 굉장히 드라마틱하다. 구약의 모든 책에서 인간의 죄악을 고발하며, 그로 인한 우울감을 여과없이 표현한다. 요새 묵상하고있는 구약성경의 첫 번째 책에서도 이것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구약이 드라마틱한 이유는, 그 우울감으로 끝을 맺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죄악이 드러나며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는 그 곳에는 항상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구원의 서광이 비쳐온다. 그러니 우리는 이 놀라운 본문들을 읽으며 경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우리의 삶에서도 서광을 비추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을 것임을 기대할 수 있다.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 2020. 8. 18.
창세기 6장 1-4절 : 인내하시는 하나님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1.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 글리슨 아처가 소개하는 창세기의 대표적 난제가 바로 이 구절이다. 뜬금없이 하나님의 아들? 네피림? 이런것들이 뭔가 싶다. 옛날부터 해석해오던 방법론들을 잠깐 소개한다. (1) 하나님의 아들 = 천사들 (2) 하나님의 아.. 2020. 8. 18.
창세기 5장 6-32절 : 거룩한 삶, 그러나 여전히 수고로운 아! 너무나도 생각할 것들이 많다. 어떻게 일상적인 삶 속에서 거룩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은 여전히 더럽고 정상적이지 않아 보이는데 말이다. 6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7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8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9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10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11 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12 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13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14 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15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16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7 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18 .. 2020. 8. 18.
창세기 5장 1-5절 : 아담의 삶과 죽음 죄는 이 땅에 죽음을 가져왔다. 죄로 인하여 아담과 하와는 필멸적 존재가 된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후손을 통하여 이 땅에 생명이 존속할 수 있도록 만드셨다. 사랑하기 위해 만드신 하나님의 형상이 계속해서 흘러갈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1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4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1. 셋, 아담의 적법한 계승자 직전 장에서 등장하였던 가인의 계.. 2020. 8. 18.
조나단 에드워즈와 도덕적 책임 - Freedom of the will 의 아르미니우스주의 반박 논증 연구 조나단 에드워즈의 도덕적 책임의 문제에 대한 연구 - 2부, freedom of the will 에 나타난 아르미니우스주의 반박 논증 연구 * 아놔, 각주 옮기는 기능이 사라졌네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보겠습니다. 일단 각주 없이 올려봅니다. ^^;; I. 들어가는 말 A. 문제의식 성도에게 있어서 인간의 행위는 구원과 관련하여 어떠한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하는가? 이를테면 자유로운 인간 의지의 발현에 의한 행위라는 측면을 부각시키게 되면, 그 논리적 귀결은 자연스럽게 성도들의 행실을 선한 측면으로 강제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이 견해는 하나님의 전능성과 믿음에 의한 칭의라는 두 가지 개념을 놓치게 된다. 반대로 하나님의 전능하신 예정과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이라는 견해를 취한다면 방금의 견.. 2020. 8. 17.
창세기 4장 25-26절 : 연약함을 인정해야 부를 수 있는 여호와의 이름 약함과 강함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늘 나의 인생에 나보다 큰 문제들을 던져 주셨다. 교만하지 말라고 그러한 것들을 놓아두신 것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것 같았던 아담은 첫 아이를 낳았을 때 그의 이름을 “성취”라고 지었다. 그러자 그는 스스로의 손으로 무언가를 움켜쥐려 방황의 땅으로 떠났다. 아들을 잃은 상처를 뒤로 한 아담은,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일까, 그는 또 다른 아이의 이름을 “주심”이라고 지었다.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 2020. 8. 17.
창세기 4장 16-24절 : 놋, 유리하는 자의 땅에서 족보를 본다는 것은 꽤나 지루한 작업이다. 어렸을 때 나의 집에는 족보책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가운데 내 본관의 이름은 없었다. 해방과 전란을 거치며 발생한 행정적 실수로 아버지와 나는 한글로 된 유일무이한(?) 본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이것을 설명해주시며 나의 뿌리에 대해 이야기해주시곤 하셨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성경에서도 많은 부분에서 족보를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의 문화와 삶의 형태에 대한 뿌리를 말하고자 함일 것이다. 많은 탁월한 학자들이 이미 밝힌 바 있지만, 성경은 당대에 쓰여진 다른 고대근동문서들과 확연히 다른 차이점을 보인다. 이 대목에서도 이것을 찾아볼 수 있다. 신적인 존재의 개입을 통해 자신들의 문화권을 옹호하려는 신화적인 움직임들이 아무것도 드.. 2020. 8. 17.